커피나무의 네 번째 월동 준비
비가 내리고 난 뒤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며칠 전 칠갑산오토캠핑장으로 캠핑나갔을 때만해도 날씨가 무척 포근하여 텐트의 문을 열어놓고 잠을 청했는데, 지금같은 날씨면 입돌아가기 딱 좋을 때군요.
쌀쌀해진 날씨, 마눌님이 쉬는 날을 이용해 베란다를 차지하고 있던 커피나무들을 거실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역시 지난해처럼 벽에 붙어 있던 소파를 거실 가운데로 옮기고, 그 자리에 커피나무 화분들을 놓아둘 계획입니다.
아...그런데, 딱 두 그루의 커피나무만 거실로 들여놨는데, 공간을 어마어마하게 차지해버렸네요.
아직 밖에는 2그루의 커피나무가 더...ㅠㅠ
넓이보다 커피나무의 높이가 더 문제입니다.
베란다에서는 천장에 약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거실로 들어오니 거의 천장에 닿아버리는군요.
더 큰 문제는 아직 베란다에 이 녀석보다 더 키가 큰 커피나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커피나무의 가지치기를 미루고 미뤄왔던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네요 ㅡㅡㅋ
커피나무가 베란다를 독점하고 있던 상황이다보니 베란다에 나가려면 숲속을 헤치는 식으로(ㅡㅡ;;)다녀야 했는데요, 거실에 들여놓고 보니 커피나무 잎들끼리 경쟁을 하고 있더군요.
다른 잎에 가려 오랫동안 햇볕을 못본 커피나무 잎은 노랗게 변해 있었고, 손으로 건드리자 툭툭 떨어져 나갑니다.
이렇게 노랗게 변한 커피나무 잎들은 군데군데 발견되었는데, 커피나무 잎이 떨어진 가지에서는 또 새로운 가지와 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봐온터라 이제는 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커피나무 가지 중간중간 잎이난 자리에는 뭔가 새로운 것들이 잔뜩 올라오는 중입니다.
곁가지 사이로 뭔가 잔뜩 올라오는 중
일부는 새로운 커피나무 잎이 되기도 하고, 또 일부는 커피꽃이 되기도 하는 그런 모양새로 보입니다.
3년 5개월, 좀 이른 커피 열매 수확
일반적으로 커피나무에 커피가 열리는 것은 4년차 이후부터라고 하던데, 저희 집 커피나무는 2년 8개월차에 커피꽃이 피었습니다.
전문 커피 농장에서는 1년에 2번쯤 커피 수확을 한다기에 커피 꽃이 피면 금방 열매를 수확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커피 열매는 생각보다 꽤 천천히 자랐고, 다 자란 커피열매도 녹색을 몇 달씩 유지하다가 가을에 접어든 지난 달부터 색깔이 변하더군요.
커피 꽃이 피고 빨간 커피 체리를 보기까지 8~9개월 남짓 걸린 셈입니다.
녹색의 커피 열매는 어느 순간 노르스름한 색을 띠더니 살짝 붉은 기가 돌다가 선명한 빨간 커피체리가 되었고, 더 지켜보고 있으니 검붉은 체리색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커피 체리의 색이 자주빛이 되었다 싶은 어제, 커피 체리를 수확했습니다.
거대하게 자란 커피나무에서 딴 커피 체리는 고작 12개 입니다ㅎㅎ
그나마 아직 녹색을 띠고 있는 커피 체리 4~5개는 따지 않고 남겨두었지만 딱 한 손에 쥘만큼의 커피 체리라니,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첫 커피 체리는 수확량이 그리 많이 않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커피꽃이 필 무렵 물조절을 잘못해 커피꽃을 많이 죽인 느낌도 있는데, 아무튼 한 번 경험을 했으니 내년 수확부터는 좀 더 풍성한 커피 수확이 되겠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수확한 커피 체리를 칼로 조심스럽게 갈라봤더니, 빨간 껍질 안쪽에 과육이 있고, 그 안쪽에 파치먼트(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파치먼트와 과육 사이에 뭔가 실같은 것이 쭉 뻗어 있는게 인상적인데요, 아마도 커피나무에서 양분을 공급하던 탯줄과 같은 그런 역할을 한 것이지 싶네요.
커피 체리의 껍질을 벗겨내자 안쪽에서 미끈미끈한 점액질 과육을 뒤집어 쓴 파치먼트가 나옵니다.
하나의 체리에서 두 개의 파치먼트가 나오는군요.
미끈미끈한 과육을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세면대로 가지고 가 물에 헹궈 냈는데, 생각처럼 과육 제거가 잘 안되는군요.
사실 그것 보다는 대부분의 파치먼트가 물에 가라앉는데, 일부는 물에 둥둥 뜨는게 눈에 띄었습니다.
보아하니 파치먼트 색깔이 검게 변한, 썩은 것들과 제대로 자라지 못한 파치먼트들이 물에 뜨는 듯 싶어 녀석들을 골라 제거했습니다.
그렇게 3년 5개월차 커피나무에서 첫 수확한 커피는 20알 남짓, 로스팅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양입니다ㅎㅎ
지금 이 상태의 파치먼트가 싹 트기에 최적의 상태라고 하는데요, 이미 저희 집은 커피나무로 꽉 들어찬 상태라 감히 심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부모님 댁, 처가집으로 보내 새로운 커피나무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플라스틱 그릇을 가져가는 저를 보며 그릇의 반은 채워 올꺼라 기대했던 마눌님은 수확한 커피 체리의 양을 보더니 웃기만 합니다.
파치먼트를 분리하고 남은 커피 체리에서는 왠지 달달한 향이 나더군요.
조금 맛을 봤더니 풋내가 살짝 돌긴 하지만 달큰한 맛이 나는데, 이 커피 체리를 말려서 차를 마신다고 하네요.
말려서 차로 마셔보리라
'커피체리티' 라 하기도 하고 '카스카라'라고 도 한다는데, 말려봐야 딱 한 잔 나올까 말까 한 양이지만 그래도 잘 말려두려고 합니다.
밤새 베란다에서 건조된 파치먼트는 점액질의 과육이 말랐고, 익히 봤던 파치먼트의 모양을 갖췄습니다.
동탄 아라비카
3년 5개월 전, 여섯 알의 파치먼트가 커피 나무가 되었고, 여기서 다시 커피 열매를 맺은, 나름 뜻 깊은 날입니다ㅎㅎ
2012년 여섯 알의 파치먼트
내친김에 3년전에 올렸던 커피 싹이 솟아오르던 허접한 타임랩스 영상도 다시 올려봅니다ㅎㅎ
500ml 생수병에 심겨져 있던 커피 콩들의 사진을 보니 격세지감입니다.
거실을 다 차지할 꺼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2012년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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