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 본 밤 줍기 체험. 튼실한 공주밤 줍는 재미와 넉넉한 인심, 한 가득 담아오다

공주로 밤 줏으러 오게나!

며칠 전, 장모님께서 공주로 밤줏으러 가는데, 저희도 와서 밤 좀 줏어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주에는 장모님의 언니들, 그러니까 마눌님의 이모님들이 살고 계시고 이런저런 일로 공주에 자주 다녀오시고, 해마다 공주의 선산에서 밤을 주워오신다는군요.

 

아직 밤을 줍기에는 살짝 이른 시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조금 있었지만 일단 공주로 출발했고 1시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했습니다.

 

마을 초입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벼가 고개를 숙여가는 풍경입니다.

가을 황금들녘 벼

 

이모님이 살고 계신 집은 마당 대추나무며 감나무가 서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 분위기였습니다.

친척들 행사때 종종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직접 찾아뵙는 건 처음이네요.

장인 장모님은 일찌감치 도착하셔서 뒷산에 올라가 계셨기에 일단 마당에 차만 세워 놓고 이모님께 인사만 드리고 나왔습니다.

가을하늘 올란도 충남 공주

 

저희가 밤을 딸 장소는 마눌님 외가의 선산으로 마을 한켠 좁다란 길을 지나 올라가는 중입니다.

밤을 딸 때는 챙넓은 모자와 튼튼한 신발, 그리고 고무코팅된 장갑을 가지고 가고, 안경이나 썬글라스를 끼고 가는게 좋습니다.

충남 공주 선산

 

오전에 일찍 도착한 장인장모께서는 벌써 밤을 한 자루 줍고 밤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쉬고 계셨습니다.

충남 공주 밤줍기

 

밤나무를 줍기전 마눌님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잠시 인사를 드렸습니다.

충남 공주 선산

밤은 따는게 아니라 줍는 것?

처음에는 장대같은 것으로 밤나무에 달린 밤송이를 따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바닥에는 이미 밤송이들이 수북히 떨어져 있어서 줍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충남 공주 밤나무

 

밤송이가 익으면 껍질이 벌어지면서 바람이 불면 밤송이가 투툭 떨어지더군요.

충남 공주 밤송이 밤나무

 

덕분에 하늘을 보고 밤을 따는게 아니라 땅에 널려 있는 밤송이에서 알밤을 꺼내기만 하면 됩니다.

밤송이 줍기 밤나무

 

밤송이 속에는 잘 익은 갈색 밤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밤송이 하나에 세 개에서 한 개의 알밤이 들어 있네요.

밤송이 줍기 밤나무

 

밤송이가 완전히 말라 떨어지는 경우,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밤이 분리되기도 합니다.

덕분에 밤송이 뒤적이랴 땅에 떨어진 밤을 주우랴 바쁩니다 ㅎㅎ

밤송이 줍기 밤나무

 

캠핑을 다니면서 속이 빈 밤송이 껍질을 종종 보기도 하지만 이렇게 단단하게 익은 밤을 꺼내는 일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은근히 재미있습니다ㅎㅎ

공주밤이 꽤 유명하다던데, 밤송이도 크고 속에 들어찬 밤도 무척 실하더군요.

밤송이 알밤 공주밤

 

물론 실하게 잘 익은 밤을 벌레가 먼저 먹은 경우도 많습니다.

마눌님과 저는 이런 벌레 먹은 밤들은 수확대상에서 제외하는데, 장모님은 모두 자루에 담으시더군요.

밤벌레 벌레먹은 밤

 

껍질이 마르면서 떨어진 밤송이들도 있는 반면, 아직 녹색의 밤송이들도 종종 눈에 띕니다.

이 녀석들은 발로 문대어 밤송이의 가시를 망가뜨린 뒤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마르지 않은 밤송이를 쪼개다보니 가시의 단면을 보게 되는데 그 모양이 왠지 무시무시하네요.

그나마 이렇게 초록색 밤송이는 찔려도 그리 아프진 않습니다.

밤송이 알밤 공주밤

 

밤송이에서 밤을 꺼내는게 처음이다보니, 밤송이 속의 밤껍질에 물기가 촉촉하고 껍질 아래쪽은 하얀 색인 것을 보게 된 것도 신기합니다.

의례 '밤'을 그릴 때 고동색으로 밤 껍질 윗부분을 그리고 황토색으로 껍질 아래쪽을 그리곤 했는데 말이죠.

물론 밤송이에서 밤을 꺼내고 마르면서 밤의 색깔은 제가 알고 있는 그 색깔로 돌아옵니다ㅎㅎ 

밤송이 알밤 공주밤

 

가을 볕이 유난히 따뜻한 날, 좋은 공기를 마시며 밤을 줍는(따는?) 기분이 꽤 좋습니다.

충남 공주 밤나무

 

한 시간 남짓 밤을 주워 포대에 담았고, 짊어지고 내려 오는 것은 제 담당입니다.

충남 공주 밤줍기 밤따기

 

포대에 절반 정도 담은 밤의 무게, 딱 '자루로 짊어지고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무게입니다ㅎㅎ

내려오면서 뒤로 처지는 밤자루를 두세번 들쳐 올리면서 내려왔습니다.

충남 공주 밤줍기 밤따기

점심 먹고 2차 밤 수확!

선산에서 밤자루를 매고 이모님댁으로 돌아오니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셨고, 부엌문 앞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충남 공주

 

야옹~야옹~하며 고양이를 불렀더니 이 녀석, 성큼성큼 다가와 다리 사이을 팔자로 오가며 몸을 부비부비하는군요.

꼬리를 세운 모습에 마눌님은 살짝 겁을 먹었지만, 저는 이게 사람에게 친근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실제로 이 녀석은 사람에게 무척 살갑게 굴더군요.

고양이 충남 공주겁먹지 말라옹!

 

집근처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재료들로 한 상 가득 푸짐하게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이모님께서는 연신 조카 사위가 처음 왔는데 대접이 시원찮다셨지만 도라지며 도토리묵이며 호박이며 무척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시골밥상 충남 공주차린게 없어서 어쩌나...!!!

 

특히 요 탱글탱글한 도토리묵 맛이 참 좋았습니다.

옆 집에서 직접 만든 도토리묵이라는데, 집에 올때 커다란 도토리묵 한 덩어리 받아왔네요.

마눌님은 도토리묵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며 도토리를 쬐금 얻어오기도 했습니다ㅎㅎ

시골밥상 충남 공주쫀득한 맛이 일품이었던 도토리묵

 

든든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혜며 커피를 후식으로 즐기고 있노라니 마당 화분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가 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살갑게 부비던 까망이와 달리 이 녀석은 나름 경계심이 강한 녀석인지 불러도 빼꼼히 쳐다보기만 합니다.

댁에서 키우는 고양이냐고 여쭤봤더니, 밥때가 되면 제 집처럼 드나드는 고양이들이 동네에 많다고 하시더군요ㅎㅎ

고양이 충남 공주그만 쳐다보고 먹을것을 달라옹!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난 뒤, 이모님께서는 집 바로 뒤쪽의 동산에 밤을 많이 남겨놨다며 주워가라고 하십니다.

뒷마당을 통해 나즈막한 동산으로 올라가니 여기는 좀 전의 밤나무와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물반 고기반이 아니라 땅반 밤송이반이군요.

밤송이 줍기 밤나무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만화속 한장면이 자꾸 떠올랐던...

 

저희가 온다고 줍지 않고 놔두셨다는데, 밤나무에서 떨어진지 시간이 좀 지나면서 밤송이가 말랐고, 덕분에 밤송이의 가시가 꽤 날카롭습니다.

두껍게 코팅된 목장갑을 꼈지만 마른 밤송이 가시의 날카로움이 가끔 깜짝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어쨌거나, 좀 전에 한 번 해봤다고 밤송이에서 밤 꺼내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고무장화로 밤송이 한 쪽을 밟고 밤송이를 벌려 밤을 슬쩍 꺼내기도 하고

밤송이 알밤 꺼내기

 

나중에는 두 발로 밤송이 양쪽을 밟은 뒤 밤을 꺼내는 요령도 터득했습니다ㅎㅎ

밤송이 알밤 꺼내기

 

30~40분 남짓 밤을 주웠을까요?

역시 포대의 반 정도 밤을 주웠습니다.

밤송이 줍기 밤나무

 

분명 저희 두 사람이 먹을 밤은 1차 수확 때 주운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밤송이가 지천에 널려있고, 밤송이 속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갈색 밤들을 꺼내는 이 작업,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이제 내려가자' 하면서 계속 다음 밤송이로 발길을 옮기게 되는군요.

밤송이 줍기 밤나무

햇밤을 맛있게 먹으려면? 밤 숙성하는 방법

선산에서 밤을 주우면서 몇 개 까먹어 봤는데, 튼실한 모양과 달리 밤의 단맛은 적더군요.

음...역시 덜 익은 걸 딴 건가?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이모님 말씀에 따르면 햇밤은 바로 먹으면 맛이 덜하고, 3~4주 가량 숙성시킨 뒤에 먹으면 맛있다고 합니다.

밤송이 줍기 밤나무

 

공주 이모님댁에서 알려준 햇밤의 숙성 방법은 무척 간단했습니다.

햇밤을 큰 그릇에 담고 물을 부어 4시간 정도 담가두었다가 물을 빼내고 햇볕에 하루 정도 말린 뒤, 김치 냉장고나 냉장실에 3~4주 보관하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밤 속에 숨어 있던 벌레도 잡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하시네요.

알밤 밤 숙성시키는 방법

저희가 딴 밤에다가 큰 비닐 봉지에 담은 밤을 한 가득 안겨주셨기에, 집에 오자마자 욕조에 밤을 쏟아붓고 물을 채워 밤 벌레를 익사시키는 중입니다.

둘이 먹기에는 밤이 너무 많고, 역시 가족들에게 많이 나눠주게 되겠지만 올해 가을 겨울은 그야말로 밤과 함께 지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분간 캠핑 갈 때 고구마나 감자를 사갈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생전 처음 해 본 밤줍기, 무척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생각하는데 마눌님이 한 마디 거드는군요.

'마누라 잘 만난 덕에 밤도 주워본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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