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뻥파워'의 최후

컴퓨터 전원이 갑자기 안켜져요

일요일 저녁, 컴터맨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갑자기 컴퓨터 전원이 안들어온다고 하는군요. 전원이 아예 안켜지는 것인지, 윈도우 화면이 안뜨는 것인지 다시 여쭤봤는데, 전원이 안들어온다는 얘기에 한마디 덧붙여 하시는 말씀, '며칠전부터 컴퓨터에서 타는 냄새가 났는데, 오늘은 갑자기 꺼지더니 안켜지네요'

 

어익후...'파워가 사망하셨구나'하는 생각과 더불어 '메인보드는 무사해야 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드리자 컴퓨터를 월요일 오전에 급히 사용해야 한다고 하시며 직접 들고 오셨습니다.

파워 사망

타는 냄새가 났었다는 얘기를 들은 이상 다른데를 살필 것 없이 제일 먼저 컴터를 분해해 봤습니다.

일단 메인보드쪽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전원부와 콘덴서 주위를 눈으로 살펴보니, 다행히 눈에 띄게 이상인 부분(탄 흔적, 콘덴서 터짐 등)은 없습니다. 보드 외관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파워를 바꿔 달아보니, 전원이 정상적으로 들어오는군요. 역시 파워서플라이가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파워 서플라이를 교체하는 것으로 마치나 싶었는데, 갑자기 전원이 나가면서 윈도우 시스템 파일이 손상되었는지, 블루스크린이 뜨며 부팅이 되지 않는군요. 아마도 컴퓨터 사용 중 여러차례 전원이 끊겼을 테니 블루스크린이 뜨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어, 윈도우 재설치 작업까지 함께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파워를 뜯어보니

파워를 교체하고 윈도우를 재설치하는 동안 파워를 분해하여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제품 겉에 붙은 스티커에는 출고 일자가 2009년 3월, 아직 A/S를 받을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A/S라고 해봐야 같은 제품으로 교체해주는게 고작일텐데, 1년을 채 못 버티고 사망하신 파워를 새 제품으로 교체해 온다고 해서 다시 쓰기에는 불안하더군요. 고사양의 CPU나 그래픽 카드를 물리지도 않은데 고장이 난데다, 파워의 싸구려틱한 외관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전형적인 뻥파워[각주:1] 처럼 보이는데, 교환해 온다고 해서 컴터맨이 직접 쓰기도 불안하고, A/S용으로 내보내기도 불안하고, 결국 A/S를 포기하고 과감히 뜯기로 했습니다.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파워 서플라이 출고 일자는 2009년 3월

 

임의로 파워 서플라이를 분해할 경우 보증기간 이내라도 A/S를 받을 수 없으며 자칫 위험할 수 있으므로 지식이 없는 분은 분해하지 마세요. 사진의 파워 서플라이도 스티커가 찢어지지 않도록 들어올렸지만 결국은 뜯었다는 흔적이 남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버린 코일, 멀쩡한 퓨즈

파워를 분해하자마자 매캐한 탄 냄새가 나는군요. 이런 경우 대개 퓨즈가 터져 파워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상과 달리 퓨즈는 멀쩡합니다. 흠...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끊겼을 것으로 예상했던 퓨즈는 멀쩡하다

그럼 어디지? 싶어 여기저기 살펴보는데, 방열판 아래 숨어 있는 코일 색깔이 이상합니다. 흑설탕을 코팅한 듯, 까맣게 반짝거리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코일이 타면서 에나멜선의 에나멜이 녹아내리면서 색깔이 변한 상태로군요.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코일을 감고 있는 에나멜선의 에나멜이 녹은 상태

좀더 자세히 보면, 기판부까지 노릇노릇하게 그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기판도 그을린 상태

케이스 안쪽에 에나멜이 녹아 튄 자국이 보입니다.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케이스 안쪽의 에나멜이 튄 상태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코일이 타면서 발생한 열로 인해 쿨링팬 전선을 감싸고 있던 투명 비닐 튜브가 까맣게 탄 상태였으며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코일이 타면서 쿨링팬 전선을 덮고 있는 비닐이 까맣게 탄 상태

기판 뒤쪽을 보니 코일이 있던 자리의 납이 지글지글 끓어 올랐던 흔적이 보입니다. 아울러 코일쪽 납땜 뿐 아니라 기타 전선을 납땜한 솜씨(사진의 왼쪽 부분) 역시 엉망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코일을 고정한 납이 끓어올랐던 흔적

분명 상태가 이 정도라면 퓨즈가 터졌어도 한참전에 터져 더 큰 문제로 번지는 걸 막았어야 했을텐데, 퓨즈는 멀쩡하고 내부 부품은 불나기 일보 직전까지 전기가 흐르는 상태로 타들어간 것입니다.

다나와 최저가 14000원대 파워의 현실

이쯤되면, 도대체 이 파워가 얼마짜리인지, 가격이 궁금해졌습니다. 제품명을 보니 저가형 파워쪽에서 그래도 꽤 인지도가 있는 업체의 제품이었으며, 현재도 판매되고 있었기에,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나와 최저가 기준으로 14000원 가량, 평균가 15500원 짜리더군요.

 

네...15000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파워의 현실은 1년을 채 못버티고, 내부 부품이 타서 화재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품의 설명을 살펴보다보니, 실제 제품과 설명이 다른 부분이 발견됩니다. 다나와의 해당 제품 설명에는 다음과 같이 전원 연결부에 EMI 필터가 달려 있다고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다나와의 제품 설명에는 EMI 필터가 달려 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이 제품에는 EMI 필터는 어딜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정도면, 허위 광고로 고발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습니다. 쩝...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실제로는 EMI 필터가 없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가짜 콘덴서 사진(아래)이 생각나 기판에 붙은 콘덴서를 뜯어서 분해해보았는데, 다행히 이 파워에 들어가 있는 콘덴서는 정상적인 제품이었습니다.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한때 인터넷에서 화재가 되었던, 중국산 가짜(?) 콘덴서

파워에는 돈 좀 써야 됩니다

컴터맨이 특히 신경 쓰는 부품이 파워와 케이스입니다. 싸구려 깡통 케이스에 뻥파워를 달면 가격이야 몇 만원 저렴해지지만, 언제 문제가 터질지 알 수 없기에, 좀 더 고가의 제품을 쓰곤 하는데요,

간혹, 그렇게 고급의 파워와 케이스를 달아놓으면, 좀 더 싼 제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소비자가 계십니다. 대개 컴터를 조금 다루어 봤다는 분들 중에 특히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이 고객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파워 이상으로 A/S를 불려 새 파워로 교체를 받은 상태라고 합니다. 파워 이상으로 교체를 했음에도 뻥파워를 넣어주신 이름 모를 A/S 기사분께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ㅡㅡ;;).

 

요즘 일반적인 컴터에 들어가는 부품이라 해봐야 CPU, 메모리, 하드디스크, ODD 정도가 기본이고 추가로 별도의 그래픽 카드 정도 들어가니 소비 전력은 그다지 높지 않고, 묻지마 파워도 별 탈 없이 잘 돌아갈 것이라며 바꿔달라 하시는데, 순전히 뽑기운일 뿐이며 언제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눈으로 사양을 확인할 수 있는 부품(CPU, 메모리, 그래픽 카드, 하드디스크)보다 더 고급으로, 신경써야할 부품이 파워 서플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파워가 좋은지 제품 설명만 봐서는 알 수 없다면,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됩니다.

값이 저렴하면서 좋은 파워는 없습니다. '최소' 3만원 이상대의 제품을 사용하세요'

예산이 모자라면, CPU나 그래픽 카드 사양을 좀 더 낮추고 파워에 더 투자하면 됩니다.

 

제품 설명에 생산물 배상 책임 보험에 들었다는 것이 특히 강조되어 있고, 파워에도 LG 화재 스티커가 붙어 있었습니다만, 타다만 뻥파워에 붙어 있어서 그런지, 왠지 공허하게 보이는군요.

파워 서플라이 Power Supply 전원 컴퓨터 뻥파워불난 후에 보상해 주겠다?

 

  1. 뻥하고 터져서 뻥파워라고 하는지, 겉은 멀쩡한데 내부는 엉망이라 뻥파워라고 하는지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파워 서플라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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