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당일치기 군산 여행. 아내의 생일, 복성루, 8월의 크리스마스, 초원사진관

마눌님의 생일날 아침

평소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는 정도가 전부지만 11월1일은 마눌님의 생일이자 1년에 딱 한 번, 제가 미역국을 끓이는 날이기도 합니다.

 

평소 마눌님의 생일에는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곤 했는데, 이번에는 황태 미역국을 끓이기로 합니다.

 

잘게 자른 황태 한 웅큼에 물과 참기름을 조금 넣어 달달 볶은 뒤 미리 불려두었다가 깨끗이 헹군 미역과 국간장을 넣어 다시 달달 볶아 주고, 물을 부어 끓이다가 다시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은근한 불에 30분쯤 끓이면 제법 뽀얀 국물이 우러난 황태 미역국이 완성됩니다.

 

아, 올해는 소금과 국간장 외에 멸치액젓도 추가했습니다.

황태 미역국

 

그릇 두 개에 황태 미역국을 옮겨 담고, 어제 저녁에 지은 곤드레 나물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상에 올리고, 냉장고에서 열무김치와 조미김, 양념장을 곁들인 조촐한 아침상이 완성되었습니다.

황태 미역국 생일상

 

생각보다 황태 미역국의 맛도 좋았고, 1년에 딱 한 번, 제가 끓인 미역국을 받는 마눌님의 리액션도 좋았습니다.

황태 미역국과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뒤, 갓 볶은 원두를 갈아 드립 커피를 내렸고

드립커피

 

마눌님의 후배님들이 보내준 치즈케익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이는 것으로, 조촐한 아침 생일 파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생일 케익

뜬금없이 떠난 군산 여행

조촐하지만 즐거운 아침 생일상을 물리고 나니 금새 점심 시간이 가까와졌습니다.

얼마 전 캠핑을 다녀왔지만, 날이 날인만큼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로 합니다.

 

평소 캠핑장이나 여행장소를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마눌님 몫이었지만, 오늘은 제가 '군산'으로 가자고 했고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려 군산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습니다.

군산 톨케이트

사실 당일치기 여행지로 '군산'을 떠올린 동기는 좀 뜬금없었는데, 며칠 전 TV 먹방프로에서 봤던 군산 고추짜장이 생각났고, 이 참에 먹으러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저희가 군산에 왔던 화요일은 고추짜장면 집이 쉬는 날이었습니다.

결국 또 다른 군산의 짬뽕집인 복성루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군산 복성루

 

'군산 복성루'를 검색해 보면 주인이 바뀐 뒤로 음식맛이 그저 그렇게 변한 곳인데 도대체 왜 저 집에 줄서서 먹는지 모르겠다는 악평이 많았지만, 일단 저희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으니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오후 2시가 조금 못 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도 복성루 주변으로 길게 줄이 서 있더군요.

일단 마눌님은 복성루 앞에 내려 줄을 서라고 한 뒤, 저는 복성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무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군산 복성루 주차장

 

저희 앞으로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저희 차례가 되기까지 40~50분 쯤 걸렸던 것 같습니다.

평소 줄서서 먹는 집은 아예 피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즐겁게 줄서서 기다렸습니다.

군산 복성루 영업시간

 

저희 차례가 되어 복성루 안으로 들어가보니, 복작복작한 느낌이네요.

군산 복성루 실내

 

작은 벽돌 건물을 식당으로 쓰다보니 복도도 식탁으로 개조하여 알뜰하게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군산 복성루 실내

 

저희는 안쪽의 홀(이라 하기에는 무척 작은, 테이블 두 개가 놓인 방)로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벽 한쪽에 작은 TV와 둘둘 말린 전기장판을 보니, 아마도 숙소로 사용되는 방인 듯 합니다.

군산 복성루 실내

 

복성루 메뉴판입니다.

짬뽕이나 볶음밥, 잡채밥 등의 가격은 살짝 비싸다 싶었는데, 나름 맛집이고 식재료를 국내산만 사용한다고 하는군요.

군산 복성루 메뉴판

 

손님이 줄을 서 있던 복성루는 바깥에서 미리 주문을 받는 모습이 보였는데, 마침 저희 앞에서 주문이 끊겨 저희는 방에 들어와 짬뽕과 볶음밥을 주문했습니다.

덕분에 주문한지 15분 정도 옆 테이블의 먹는 모습을 구경한 뒤에야 겨우 짬뽕 한 그릇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군산 복성루 짬뽕

 

복성루의 짬뽕은 고기육수를 사용한 듯, 얼핏 보기에도 국물이 진해보였습니다.

조리되는 시간동안 기다린 덕분인지, 면발은 탱글탱글했고, 오징어와 새우, 홍합, 바지락 등의 해산물도 나름 푸짐한 진국이었습니다.

군산 복성루 짬뽕

 

복성루 짬뽕 국물은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대신, 달큰한 맛이 좀 많이 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매콤한 짬뽕 국물을 기대했던터라 좀 아쉬웠는데, 마눌님은 진한 짬뽕 육수맛이 입에 착착 감긴다면서 만족감을 표시했습니다.

군산 복성루 짬뽕

 

짬뽕이 나온지 정확히 9분 뒤, 그러니까 홀에 자리잡고 주문한지 24분만에 마눌님이 주문한 볶음밥이 나왔습니다.

군산 복성루 볶음밥

 

고슬고슬한 여느 중국집의 볶음밥과 달리 복성루의 볶음밥은 불향이 살짝 풍기면서도 촉촉했으며, 계란물을 위에 부어 익힌 비주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따뜻했던 짬뽕국물과 달리 미지근하게 식은 짜장소스가 아쉬웠고, 역시 제 입에는 많이 달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군산 복성루 볶음밥

무엇보다 15분만에 나온 짬뽕보다 9분이나 늦게 나와 짬뽕으로 어느정도 배를 채워버렸고, 볶음밥 자체를 맛있게 먹을 타이밍을 놓쳐버린게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인 복성루 짬뽕의 맛 점수는 (후하게) 75점, 굳이 줄서서 먹을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쪽이었으나 마눌님은 충분히 줄서서 먹을만큼 좋은 맛이었다고 하네요.

군산 복성루 짬뽕의견이 엇갈린 복성루 짬뽕맛

복성루 짬뽕보다 아련했던, 초원사진관

적당한 맛과 아쉬움이 함께 남았던 복성루를 나와 1km 남짓 떨어진 군산 일본식가옥(히로쓰가옥)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잘 정돈된 느낌의 골목길에서 옛 일본식 가옥이 어디있나 싶었지만, 작은 골목이라 어렵지 않게 히로쓰가옥을 찾을 수 있었고, 개방된 정원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군산 일본식가옥 히로쓰가옥

 

촘촘히 나무가 심어진 정원은 좀 답답하다 싶은 느낌도 있었지만, 늦은 가을의 짙은 햇볕을 잔뜩 받은 나뭇잎의 색깔이 참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군산 일본식가옥 히로쓰가옥

 

잠시 히로쓰가옥을 구경하다가 마눌님에게 이끌려 초원사진관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옛날 분위기가 느껴지는 낮은 집들과 담장들은 예쁘게 꾸며져 있었으며

군산 초원사진관

 

근처 길 전체가 흔한 아스팔트 대신, 제주도 화강암 느낌(!)의 무늬가 새겨져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군산 구영2길

 

전봇대에 붙은 표지판을 따라 잠시 걸어 초원사진관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마눌님께서 처음에 '초원사진관'이라고 했을 때는 '어디?'라고 되물었고,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얘기에 거기가 여기? 였구나 싶더군요.

군산 초원사진관 8월의 크리스마스

 

사진관 바깥에는 영화에 등장했던 그대로, 여주인공의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군산 초원사진관 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분명 극장에서 본 것 같긴한데 언제 누구와 봤는지 가물가물, 큰 줄거리는 기억나지만 세부적인 장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영화입니다.

문을 열자 보이는 편지봉투를 보고, 이게 뭐지? 싶었는데

군산 초원사진관 8월의 크리스마스

 

초원사진관 안으로 들어가 벽에 붙어 있는 8월의 크리스마스 장면장면들을 보니, 2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 장면장면이 기억나더군요.

군산 초원사진관 8월의 크리스마스

 

정말 오랫만에 보는 티코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했던 녀석이라는데 너무 깨끗해서 이질감이 들기도 했지만 추억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티코

 

군산 일본식가옥부터 초원사진관 인근의 골목길은 옛날과 요즘의 느낌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찬찬히 걸으며 구경할만한 곳이었습니다.

 

햇볕이 유난히 낮고 진했던 늦은 가을날, 마눌님의 생일을 맞아 뜬금없이 다녀왔던 군산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군산 당일치기 여행

아, 군산에서 짬뽕먹고 돌아간다는 마눌님의 사연은 그 날 저녁 라디오 전파를 탔고, 덕분에 잔잔한 기분으로 돌아오던 차 안은 순식간에 놀람과 환호성으로 가득차기도 했던, 여러모로 재미있었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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