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꽃 구경을 위해 찾은 민둥산, 오랫만의 등산
11월, 마눌님의 생일을 맞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년 내내 캠핑만 다니다 정말 오랫만에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1박 2일의 짧은 코스였지만 여러 곳을 보고 즐길 수 있었던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1박 2일 여행의 마지막날 다녀온 민둥산 등반 코스였습니다.
사실 저는 등산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터라, 여행 코스에 등산을 끼워넣은 것이 그리 탐탁치 않았지만 마눌님은 등산을 무척 좋아하는데다 이번 여행은 마눌님 생일 기념 여행이라 군소리 없이 등산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민둥산은 가을 억새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매년 민둥산억새꽃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9월27일부터 11월3일까지 였군요.
저희는 사람이 복작복작한 곳을 피하는터라, 축제가 막 끝난 것이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민둥산 등산로로 가는 길은 여러 곳이 있고, 저희는 차로 등산코스 8부 능선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적혀 있는 '발구덕'을 네비게이션에 찍고 향했습니다.
그런데, 발구덕으로 향하던 중 만난 좁은 자동차길, 11월3일 이후 산불방지를 위해 길을 통제한다고 되어 있네요.
하지만 네비님은 계속 출입통제라고 써있는 길로 가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마눌님의 인터넷 폭풍 검색을 통해 알아 낸 민둥산억새꽃축제추진위원회 전화번호 033-591-9141로 전화를 했더니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민둥산 등산로 입구(정선군 남면 무릉리 148-2)의 주소를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방향을 돌려 민둥산 등산로 입구로 향했습니다.
낮에 사진찍는 것을 깜빡하여 하산 후 깜깜할 때 찍은 민둥산 등산로 입구
민둥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는데 여기서 부터 왕복 2시간 30분 정도의 산행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낮에는 등산객의 차량 출입을 이곳에서 통제하는데 알고보니 오후 4시 이후에는 등산객의 차량도 8부 능선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차량 출입 통제가 오후 4시부터 풀린다는 사실은 8부 능선까지 올라와 매점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는데요, 등산로 입구에서 이 사실을 알려주었더라면, 좀 더 기다렸다가 차를 가지고 올라갔을 텐데 하는 생각이 굴뚝같더군요.
민둥산 억새밭을 향한 등산 시작, 만만치 않은 코스
차량 출입이 오후 4시부터 풀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등산로 초입에 민둥산으로 향하는 등산코스와, 발구덕으로 향하는 좁은 자동차길이 있습니다.
(경사가 꽤 가파른) 등산을 즐긴다면 민둥산으로, (조금 난이도 있는) 올레길 산책을 즐긴다면 발구덕을 향해 가실 것을 권합니다.
선택을 잘해야...
저희는 민둥산 등산코스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옮긴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경사가 꽤 있는, 등산코스입니다.
민둥산 등산로 초입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다
민둥산 등산코스의 숲은 무척이나 울창했고 낮게 드리운 해는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납니다.
민둥산의 울창한 숲. 사진으로 보면 좋은데, 오를 때는 이런 느낌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민둥산'이라는 이름과 달리, 나무는 무척이나 키가 크고 울창합니다.
민둥산을 오르는 등산코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는 표현은 부족하고, 숨이 머리 꼭대기를 뚫고 나올 것 같이 헉헉대며 올라갔습니다.
사실 억새밭에 지는 해가 낮게 드리운 골든 아워를 보기 위해 급하게 올라간 것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코스 자체가 경사가 만만치 않더군요.
한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는데 갑자기 산등성이에 배추밭이 나타납니다.
맨몸으로 올라가는 것도 헉헉대며 숨을 몰아쉴 지경인데, 여기 배추밭은 도대체 어떻게 심고 수확할까? 잠시 갸우뚱했습니다.
헉헉대며 올라왔는데 보이는 배추밭
민둥산 중턱 발구덕 마을, 가뿐 숨을 돌리다
알고보니 민둥산 등산로 입구에서 등산로를 이용해 헉헉대며 올라가다 배추밭이 나타나는 이 근처까지, 앞서 갈림길의 '발구덕'의 자동차길이 통하는 곳이더군요.
여기서부터는 포장된 길을 따라 걷는, 나름 한가로운 산책 코스였습니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숨을 돌리며 나무사이로 비쳐오는, 낮게 드리운 햇볕을 즐기며 걸어갑니다.
발구덕 자동차길을 이용하여 걸어왔다면 그나마 수월했을 듯
민둥산의 가을, 말그대로 형형 색색으로 물든 숲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북유럽 어느 곳의 풍경이라며 보여줘도 깜빡 속을 것 같은 숲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올라오길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결 여유가 생겼고 이제 좀 더 올라가면 민둥산 억새밭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갑니다.
산 중간중간에 걸려 있는 자연보호 플랭카드도 읽어보면서 올라갑니다.
끝난줄 알았니? 민둥산 억새밭을 향한 등산은 이제부터 시작!
숨을 돌린 것도 잠시, 이제 민둥산 정상까지 900m 가량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주차장에서 1.8km 지점이라니 이제 2/3 남짓 온 셈이네요.
헉...민둥산 정상까지 900m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상황, 노을이 가득찬 억새밭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또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민둥산 억새밭을 향하는 길, 또 다시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코스를 미리 알았다면, 이정도에서 그리 숨차하지는 않았을 꺼라는 생각이 드네요.
민둥산 억새밭을 향하는 길, 숨이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구경하며 잠시나마 가쁜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눈이 호강한 덕에 힘든 것도 참고 올라갈 수 있었다
걷고걷고 또 걸어, 드디어 산너머로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
마음은 금방 뛰어올라갈 것 같은데, 길을 올라가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입니다.
고지가 저긴데 ㅠㅠ
또 나시 나타난 이정표. 이제 400m가 남았다고 하네요.
분명 엄청 힘들게, 오랜 시간 걸어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가야할 길이 400m라니...ㅠㅠ
중간중간 나타나는 이정표를 보면...힘이 빠진다 ㅠㅠ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돌아본 등산로 주변의 억새밭 풍경.
그냥 여기서 대충 사진 몇 장 찍고 내려갈까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억울해서라도 더 올라가자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저 앞에 고지가 눈에 들어오는데, 진격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고, 해는 점점 낮아지는게 이러다 정상의 골든 아워를 놓치는게 아닐까 마음은 조바심이 납니다.
민둥산 등산 코스를 계획한 마눌님께서도 헉헉대기는 마찬가지.
잠시 걷다가 쉬고 또 걷다가 쉬기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아래를 내려다보다, 지게에 20리터 물통 두개를 지고 올라오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헉...그냥 올라가는것도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 이 코스에서 이 분들은 도대체 뭘까 @,.@;;;
알고보니 산정상에서 음료나 먹거리를 판매하는 분들이더군요.
처음 이분들을 봤을때 무슨 도인을 발견한 느낌
가파른 산비탈에 서 있는 나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나무의 모양새를 감상했겠지만 이때는 고지를 오르는데 가로막는, 귀찮은 장애물 정도로 느껴집니다.
길막지 마라! 엉아 힘들다 ㅠㅠ
드디어 민둥산 정상! 억새밭, 바람, 황금빛 노을의 장관
한걸음 한걸음 걸어올라 드디어 만난 민둥산 정상의 표지석입니다.
해발 1119m라고 새겨진 민둥산의 표지석, 힘들게 올라와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민둥산 정상에는 관람용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동전을 넣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망원경입니다(그래! 여기까지 꺽꺽대며 올라왔는데 동전을 넣으라고 하면 섭하지!)
하지만 가을 단풍과 억새, 황금빛 저녁 햇볕과 높은 하늘이 함께 있는 민둥산 정상에서는 굳이 망원경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눈돌리는 곳곳이 장관입니다.
물론 민둥산 정상까지 올라온 것은 억새를 보기 위한 것이죠.
아침의 억새는 은억새, 늦은 오후의 억새는 금억새라고 하죠.
저희는 운좋게 골든 아워에 딱 맞춰 온 덕분에 금억새 중에서도 황금억새를 볼 수 있었습니다 ㅎㅎ
민둥산 정상에는 바람이 꽤 세차게 불었고 키작은 소나무를 둘러싼 억새도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립니다.
가파른 산비탈에도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만 좋아하지 찍히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터라, 평소에는 마눌님 혼자 등장하는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이곳 민둥산 정상은 힘겹게 올라온 덕에 기록을 좀 남겨둬야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온갖 포즈를 다 취해가며 사진을 찍어댑니다.
올라오느라 땀에 흠뻑 젖은 후드티가 민둥산 정상의 세찬 바람을 맞아 차가와지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오랫만에 만난 골든 아워를 놓고 가기가 아쉬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펜탁스 K-01과 플래시, 그리고 얼마전에 마련한 SLIK PRO 330DX 삼각대를 함께 들고 올라오면서, 플래시와 삼각대를 차에다 두고 올껄 그랬다 싶어 속으로 몇 번이나 후회를 했는데, 그래도 산 정상에 도착하니 이 녀석들 덕분에 맘먹은 대로 사진을 찍어댈 수 있었습니다.
힘들게 갖고 올라온 카메라와 플래시, 삼각대! 원없이 찍어보리라!
민둥산 정상의 억새밭과 눈앞에 펼쳐진 민둥산의 절경을 눈과 마음 속, 그리고 카메라에 실컷 담다보니 정말 해가 기울어지고 있네요.
해가 지기전에 내려가야겠다 싶어 민둥산 표지석을 한 장 더 찍었습니다.
해가 기울면서 민둥산 표지석도 붉게 물들고
내려오는 길에 또 다시 만난 나무, 올라갈 때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느껴짔지만 이제는 산에서 만난 친구처럼 반가운 마음이네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때 마음이 다르다는게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민둥산을 내려오는 길, 노란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민둥산은 어느새 붉은 빛을 잔뜩 머금고 해가 저물어갑니다.
민둥산 8부 능선, 발구덕 근처의 매점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메밀 배추전과 막걸리 한 잔으로 피로를 싹 씻어냈습니다.
민둥산 등산, 조금 수월하게 오르려면
민둥산 등산코스, 그리 만만하게 볼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등산을 즐기지 않아서 유독 힘이 들었나 싶었는데, 내려오는 길에 만난 등산객 모두 제가 올라갈 때와 같이 숨이 머리끝까지 찬 채로 헉헉대며 올라가는 것을 보면, 민둥산 등산 코스 자체가 나름 난이도가 있는 듯 싶네요.
짧은 시간에 민둥산 억새밭을 구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저희처럼 민둥산 등산로 입구에서 주차를 하고 코스 전체를 오르는 대신, 오후 4시 이후에 민둥산 등산로 입구의 차량 통제가 풀리면 차를 이용해 발구덕까지 올라오면 '그나마 조금은' 수월한 등산을 할 수 있을 듯 싶네요.
단 이런 방법을 이용하려면 해지는 시간까지 감안, 시간 계산을 잘 해야 합니다.
해가 짧아진 요즘이라면 시간이 무척 빠듯할 수 있습니다.
민둥산 정상의 억새밭, 오르는 것은 힘들었지만 눈아래 펼쳐진 장관 덕분에 힘들게 올라온 보람을 한껏 느낀, 간만의 등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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