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때 듣던 LP판들, 본가에서 발견하다
지난 주말에 본가에 갔다가 제가 쓰던 방에 봉인되어 있던 LP 판들을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제조일자가 78년이라고 찍혀있는 산울림의 LP를 비롯, 30장 남짓한 LP들이 있었고, 커다란 자켓에 시원시원하게 그려진 그림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LP를 제대로 즐긴 세대는 아닙니다.
워크맨, 마이마이로 일컬어 지는 카세트 테잎 세대였고 고등학생 시절 1~2년 정도 짧은 시기만 LP에 살짝 발을 담갔다가 그뒤 본격적으로 펼쳐진 CD에 익숙한 세대인데요,
내가 산건 아닌데, 어디서 오셨는지?.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LP에 발을 담글 수 있었던 것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헤비메탈에 심취했던 덕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엄격한 심의로 인해 과격한 헤비메탈 음반은 아예 국내 발매가 되지 않거나, 발매되더라도 몇 곡은 짤린 누더기 상태로 발매되곤 했던 덕분에 헤비메탈 매니아들은 흔히 '빽판'이라고 불리는 해적판 음반을 구하러 종로 세운상가를 뒤지곤 했습니다.
이런 음반의 표지들은 누가누가 더 과격한가를 겨루듯 대부분 피범벅, 괴물범벅 일색이라 집에 들고 들어갈때는 들키지 않게, 무척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장롱 깊숙히 봉인되어 있던 DUAL 1019 턴테이블을 꺼내다
본가에 와서 가끔 꺼내보기만 했던 LP판들, 갑자기 제대로 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버지 조차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멜론 스트리밍을 즐겨 듣는 시대이다보니, 턴테이블은 보자기에 봉인되어 장롱 깊숙히 넣어둔 상태였습니다.
오랫만에 장롱 밖으로 나와 빛을 본 DUAL 1019 턴테이블 입니다. 오디오 장식장이나 플라스틱 덮개가 없었던터라, 밖에 꺼내둘 당시의 먼지가 고스란히 박혀 있네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65년부터 71년까지 생산된 모델이라고 합니다.
아주 희귀하거나 고급의 모델은 아니지만 지금도 꽤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전자동 지원 모델입니다.
다이얼과 무게추를 돌려 압을 조절합니다.
16RPM부터 78RPM까지 지원하는데, 사실 저도 LP만 접해본 터라 33RPM 이외의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카트리지는 SHURE의 M75ED Type2가 붙어있네요.
바늘은 제짝이 아닌 듯 싶은데, 그나마 카트리지가 온전하게 붙어 있는게 다행입니다.
DUAL 1019라는 라벨이 붙어 있는데, 이건 제조사에서 달려나온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붙여둔 것으로 보입니다.
전기 코드와 RCA 케이블은 수십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케이블들은 아무래도 교체를 해야할 듯 싶네요.
다행인것은, 독일 제조 모델이다보니 오래된 제품임에도 110볼트와 220볼트를 전환하여 사용할 수 있단 것입니다.
이 턴테이블을 장롱에서 꺼낸 순간부터 외관을 깨끗이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지만, 전원을 연결해보니 톤암의 작동이 시원치 않습니다.
역시나 다행인 것은 기계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깨끗이 손질하면 쌩쌩하게 사용할 수 있을 듯 싶네요.
요즘 전자기기들의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최소 40년 이상의 나이를 먹었지만 탄탄함을 과시하는 기계식 턴테이블의 묵직함이 느껴집니다.
인터넷에 DUAL 1019를 검색해보니 아직도 거래와 정보 공유가 꽤 활발한 듯 싶네요.
대부분 요렇게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무 케이스를 교체해가며 잘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큽니다.
아...그런데, 검색 중 발견한 사진 한 장. 사진 파일 이름은 DUAL1019 Puzzle.jpg 입니다.
이 사진을 보니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아까운 기계 버리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dual1019_puzzle.jpg
천만 다행으로, vinylengine 이란 웹사이트에서 DUAL 1019의 작동 매뉴얼과 정비 매뉴얼을 발견했습니다.
매뉴얼은 간단한 가입 절차를 거쳐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었습니다.
PDF 형태의 서비스 매뉴얼에는 정비 방법이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분해 조립 순서와 트러블 슈팅을 빼곡히 설명한 텍스트와 컴퓨터 그래픽의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이미지가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40~50년 된 턴테이블의 서비스 매뉴얼을 구할 수 있어 무척이나 기분이 좋네요.
당분간은 이 매뉴얼을 읽으면서 DUAL 1019 턴테이블의 정비에 몰두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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