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CD의 마감, 한국 최초로 발매된 DVD에 얽힌 추억
한때 비디오 CD와 DVD를 모으는게 취미였지만 몇 년전 자그마한 사고로 소장했던 중요 DVD를 대부분 잃어버린 후 가지고 있는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요즘은 블루레이로 발매되는 영화에 살짝 관심이 가긴하지만 필요하다 싶으면 맘대로 사들이던 총각 시절도 아니고(ㅠㅠ), 무엇보다 예전 같은 수집 욕심까진 도달하지 못하고 있네요.
얼마전 케이블 TV에서 지나데이비스 주연의 델마와 루이스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름 재미있었던 영화인데, 사실 지나데이비스가 나온 영화를 볼때마다 떠오르는 건 몇 안되는 DVD 틈에 끼어 있는 컷스로트 아일랜드 DVD와 그에 얽힌 추억들입니다.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컷스로트 아일랜드 DVD, 포스터 분위기가 상당히 옛날식이죠? 1996년도에 발매된 영화이기도 하지만 바다에서 활약하는 해적 얘기를 다룬 영화라서 일부러 구식 컨셉으로 설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조니뎁 주연의 캐리비언 해적과 같은, 성공한 해적 영화도 있지만 이전에는 해적, 바다를 주제로 한 영화는 엄청난 제작비만 날리고 폭싹 망한다는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워터월드가 그랬고, 컷스롯 아일랜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영화 제작사인 캐롤코는 컷스로트 아일랜드가 개봉하기 전이었던 1995년도에 이미 파산신청을 한 상태, 당시 신작이었던 이 영화만 제외한 모든 판권을 20세기 폭스사에 넘겼던 상태였는데요, 컷스로트 아일랜드에 걸었던 일말의 희망도 무색하게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다는군요.
참패도 보통 참패가 아니라, 얼마전 '존카터: 바숨전쟁의 서막'이 그 기록을 갈아치우기 전까지, 헐리우드 역대 흥행 참패 1위의 대재앙이었다고 합니다.
영화 홍보하면서 제작비 드립 친 영화 중 잘된 영화가 몇 안되는 것으로 아는데, 이 영화 역시 DVD 속지에 까지 1억2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DVD 뒷면에는 '다이하드2', '클리프행어', '델마와 루이스' 등 감독과 주연 배우에 대한 얘기들로 빼곡하지만 저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구석에 찍힌 삼성 마크입니다.
이 DVD를 틀면 제작사인 캐롤코 로고에 앞서 삼성의 로고가 나오는데요, 이 영화가 출시되었던 1996년도는 DVD라는 매체가 막 출시되던 시기와 맞물렸습니다.
국내 대기업들은 당시만해도 세계 IT를 선도하고 있던 일본 업체들을 따라가던 시기였고 DVD 역시 '일본 제품에 비해 시기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손색이 없다'는 논조의 기사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삼성, LG등의 대기업이 뛰어들었던 영화 시장
뭐 어쨌든, 삼성이나 LG 등의 대기업에서는 의욕적으로 내놓은 DVD를 밀어주기 위해 헐리우드 대작들을 속속 DVD로 내놓았는데요, 컷스롯 아일랜드는 이런 분위기에 맞물려 국내 최초로 발매된 DVD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당시 삼성에서 내놓았던 DVD 타이틀에는 요즘 DVD에서는 볼 수 없는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어로 더빙된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한국어 음성 더빙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만, 이 당시 삼성에서 출시했던 컷스로트 아일랜드, 터미네이터2 등의 DVD에는 한국어 더빙이 첨부되었습니다.
덕분에 DVD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삼성판' 컷스로트 아일랜드와 터미네이터2 수집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어 음성 더빙으로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옛날 명화극장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요즘은 원어를 들으면서, 자막을 보는게 워낙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어로 더빙된 외화를 보는게 당연한 시절도 있었죠.
한국어로 더빙된 DVD의 영상을 몇 십초라도 떠서 올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DVD를 틀면 첫머리에 나오는 파란 화면으로 대신합니다.
컷스로트 아일랜드, 영화보다는 DVD라는 새로운 매체로 만나다
사실, 컷스토르 아일랜드는 '영화'만을 놓고 본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DVD를 접하게 된 인연은 컴퓨터 잡지, 1997년도 PC사랑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컴퓨터 잡지 답지 않게 여성 모델을 전면에 내세운 컴퓨터 잡지, 사실 여성 모델의 원조는 PC 서울이란 잡지였는데요 어쨌든 여성 모델의 표정은 지금 봐도 파격적이긴 합니다.
당시 풋풋한 대학생(?) 이던 저는 한창 컴퓨터 잡지에 리뷰나 벤치마크 기사를 제공하고 있었는데요, 컷스로트 아일랜드 DVD 타이틀은 당시 국내 굴지(?)의 IT 기업이던 두인전자에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DVD 비젼 킷의 번들 타이틀이었습니다. 96년 연말에 제품을 받아 원고를 작성했지만, 제품 출시가 늦어지면서 97년 4월에 기사가 실렸네요.
요즘에야 컴퓨터 성능이 좋아져서 DVD 정도는 아무런 준비없이 그냥 돌릴 수 있지만, 당시 컴퓨터의 CPU나 그래픽카드는 '차세대 영상매체'인 DVD를 재생할 만큼의 성능이 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DVD만 연산처리하는 DVD 디코딩 보드가 필요했습니다.
물론 DVD 미디어를 읽을 수 있는 DVD 롬 드라이브 조차 없던 시기라, 컴퓨터에서 DVD를 보기위한 DVD롬 드라이브와 디코딩 보드, DVD 타이틀을 세트로 묶은 제품들이 준비중이었고, DVD 비젼 킷이 바로 그런 제품이었습니다.
당시 DVD는 최첨단 제품이었던 탓에, 리뷰는 DVD의 특징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불꽃 씬에서도 깍두기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던가, 여러 나라 자막을 지원하고, 원하는 장면부터 골라볼 수 있다는 등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군요.
카메라의 방향을 9가지 각도로 바꿔보는 멀티 앵글 기능은 DVD 출시 초기 줄기차게 회자되었지만, 그리 실용적이진 못했던 탓인지 이런 기능이 적용된 영화 타이틀은 못 본 것 같네요.
지금 컴퓨터 부품 시장은 대만, 중국 기업 일색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두인전자, 가산전자, 석정전자와 같은 개발 능력을 갖춘 업체들이 꽤 선전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컴퓨터 잡지에는 100페이지가 넘는 광고들이 실릴 정도로 IT 경기가 좋았던 시절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컴퓨터 잡지 시장 자체가 붕괴되고 PC 사랑만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죠.
야심차게 등장했던 DVD, 한때 유명 배급사들이 한국 시장에 들어왔고 DVD 전문 잡지까지 생길 정도로 반짝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철수했고 DVD 전문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듣자하니 요즘에는 신작 영화 DVD나 블루레이 타이틀에 한국어 자막이 들어가는가? 를 살펴야 할 정도로, 한국의 2차 판권 시장은 별 볼일 없는 규모가 되었다고 하네요.
한국어 더빙까지 들어갔던 컷스로트 아일랜드 DVD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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