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식으로 고친 Metz 48AF-1 플래시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옛날식으로 고친 Metz 48AF-1 플래시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옛날 옛적, 말을 잘 안듣는 가전 제품은 몇 대 때리면 고칠 수 있다는 수리법이 그럴듯하게 통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나이드신 분들 중에는 예전처럼 때리는 방법을 믿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때려서 고칠 수 있는 가전 제품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컴퓨터는 하드디스크와 같은 충격에 민감한 부품들이 있어[각주:1] 예전같이 때렸다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기 십상이죠.

구형 브라운관 TV

 

구입한지 3년, 말썽부리기 시작한 Metz 48AF-1 플래시

제가 쓰는 디지털 카메라는 2006년에 구입한 제품으로 이제는 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6년전 100만원이란 거금(!)을 주고 샀던 DSLR은 이제 중고 시장 가격이 10만원 수준, 중고로 팔기엔 본전 생각이 납니다.

 

그나마 구닥다리 DSLR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 3년전 구매한 외장 플래시 Metz 48AF-1입니다.

처음에는 겁도 없이 수동 플래시에 덤벼들었지만, 내공 부족을 뼈저리게 느끼고, P-TTL(일종의 자동 모드)이 지원되는 플래시를 찾다가 중고 제품을 영입했습니다.

 

중고 제품임에도 꽤 값이 나가는 플래시였지만 초심자가 쓰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편리한 제품이었습니다.

이 플래시로 두 권의 컴퓨터 조립책 자료 사진을 모두 찍었으니, 값은 톡톡히 한 셈입니다.

디지털 카메라 DSLR 외장 플래시 스트로보 Metz 48AF-1

 

그런데, 며칠 전, 플래시를 쓰기 위해 전원을 넣었는데, 의례 들리던 모터 소리가 들리지 않고, 액정 화면에는 렌즈 초점 거리 대신 'Er'이라고 표시됩니다.

전원을 껐다 켜도, 배터리를 뺐다 끼워도 계속 같은 화면만 보일 뿐입니다.

디지털 카메라 DSLR 외장 플래시 스트로보 Metz 48AF-1

 

자동 플래시는 렌즈 초점 거리에 따라 플래시 내부의 광원이 모터로 움직이며 이때 특유의 기계음이 납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플래시를 앞쪽에서 보면 플래시 중앙의 광원이 움직여야하지만 그냥 멈춰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디지털 카메라 DSLR 외장 플래시 스트로보 Metz 48AF-1

 

구입한지 3년이니 무상 A/S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유상 A/S를 받는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해볼까? 분해 청소를 해볼까?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는데, 카메라 부품을 제대로 분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로 갑갑한 상황, 혹시나 싶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 외국 펜탁스 카메라 포럼에서 제 플래시 기종과 증상이 정확히 일치하는 질문과 답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해결책이란 것은, 플래시 헤드를 툭툭 때리란 것이었는데요, 요즘 세상에 때려서 고치는 수리법이라니, 장난이 아닐까 싶었지만 문제가 해결됐다는 또다른 댓글이 보였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DSLR 외장 플래시 스트로보 Metz 48AF-1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플래시 전원을 끄고 헤드 쪽을 노크하듯 툭툭 때렸습니다.

전원을 켜자 액정에는 여전히 'Er' 메시지만 떠 있었고, 너무 살살 때리면 효과가 없으니 좀 더 세게 때리란 얘기에 손바닥으로 두 대 정도 탁탁치자, 신기하게도 'Er'이라 표시되던 액정에 숫자가 표시되고 렌즈 초점 거리를 조절하자 플래시 헤드도 정상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DSLR 외장 플래시 스트로보 Metz 48AF-1때리자 정상으로 돌아왔다!

 

싫증나서 버리는 경우가 더 많은 전자 기기

제가 어릴 적 가전제품은 최소 10년을 보고 사는 '재산'이었고 15년 20년 씩 쓰는 경우도 많았던 것에 비하면 요즘 전자기기의 수명은 짧아도 너~~무 짧아졌습니다.

 

휴대폰의 수명은 약정 기간과 거의 일치하고, 화소수는 디지털 카메라의 화질과 관련없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면서도 정작 6년 밖에(!) 안된 DSLR을 바꾸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컴퓨터나 노트북 역시 3~4년쯤 쓰면 바꾸고 싶어 집니다.

디지털 카메라 DSLR 외장 플래시 스트로보 Metz 48AF-1 캐논 Canon Demi EE28본가 장롱에 고이 모셔진 1967년산 캐논 demi ee28 카메라. 여전히 잘 찍힌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성능, 수명을 핑계댔지만 싫증나서, 또는 새 것을 지르고 싶어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플래시 역시 사실은,

고치려니 수리비가 비싸 -> 새 플래시를 사야겠군 -> 구닥다리 DSLR용 플래시를 지금 사는 건 손해
-> DSLR을 바꾸자!

는 흐름을 타며, '이건 합리적인 소비야 합리적인 소비!'라며 주문을 걸고 있었으니 말이죠.

 

오늘의 사건(?)을 계기로 DSLR과 그 일당의 수명이 다할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쓰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물론 지름신의 강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을 것이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DSLR 외장 플래시 스트로보 Metz 48AF-1 캐논 Canon Demi EE28너무 오래되어 효과가 있을지 모르는 지름신 부적

 

  1. 주변의 어떤 분은 실제로 컴퓨터를 고친다고 때려서 하드디스크를 망가뜨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더 답답한 것은 하드디스크를 왜 때리면 안되는지 일러줬지만, 그동안은 때려서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나중에는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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