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하지만 꾸준한 커피 사랑
커피는 제 블로그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주요 카테고리의 하나지만, 이 커피 카테고리에 글을 올린지 참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제가 바리스타 수준의 커피 전문가도 아니고(집 근처 바리스타 학원을 지나며 한번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은 가끔 합니다) 집에서 생두를 로스팅하여 아침마다 핸드 드립으로 내려먹는 정도니 자주 쓸만한 얘기꺼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커피 카테고리는 개점 휴업 상태인 셈이죠.
하지만 1년 365일 중 커피를 내리지 않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일상 생활처럼 즐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사는 저희 집에서는 매번 생두 2kg을 시키곤 합니다.
그간 구매 내역을 보니 생두 2kg은 두 달이 조금 안되는 기간에 소비하게 되는군요.
생두를 직접 로스팅하여 마신지 몇 년되긴 했지만 아직 커피 맛을 보고 생두의 종류를 구별할 정도의 그런 수준이 되려면 멀었습니다.
특정한 종류의 생두를 선호한다기 보다는 여전히 매번 다른 종의 생두를 주문하고, 로스팅 때마다 맛의 차이를 느끼려고 애쓰는 그런 수준입니다.
이번에 주문한 생두는 콜롬비아 수프리모 모틸론 1kg과
파푸아 뉴기니아 유기농 1kg입니다.
얼마전 우연히 커피 생산과 관련된 다큐를 봤는데, 많은 커피 농장에서 맹독성 농약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다더군요.
커피 생산에 동원되는 인력은 대부분 지역의 가난한 농민들, 재배 과정에서 맹독성 농약에 의한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는 다큐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로는 되도록 '유기농'이라는 딱지가 붙은 생두를 고르곤 합니다.
그런데 많은 수의 영세 커피 농장은 맹독성 농약을 살 돈이 없어서 유기농으로 밖에 재배할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농 인증을 받을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유기농" 딱지를 붙이지 못한다는 웃픈 현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유기농 생두를 주문해봤는데, 대개 일반 생두보다 사이즈가 좀 작은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문한 파푸아 뉴기니아 유기농은 그리 작진 않군요.
그렇다고 큰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간급 사이즈는 되는 듯 합니다.
이제는 나름 손에 익은 자작 로스터
생두(커피콩)를 구입해 직접 로스팅(굽기)한다고 하면, 꽤나 멋있는 기계로 전문적인 모습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지만, 저희 집에서 로스팅을 담당하고 있는 저 요상하게 생긴 기계는, 자작 로스터인 "킴스로스터 3호"입니다.
멸치국물을 낼 때 쓰는 스테인레스 다시통과 모터, 그리고 나무 박스를 조립해 만든 킴스로스터 3호는 이미 제작 과정을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요, 올린 날짜를 보니 벌써 1년이 훌쩍 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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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킴스로스터 3호로 한 번에 볶는 생두의 양은 200g이 가장 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는 저울로 200g의 생두를 준비해두곤 합니다.
자작로스터인 킴스로스터 3호는 몇 차례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스테인레스 다시통으로 만들었기에 생두가 로스팅되는 과정을 지켜볼 관측창이 없었고 이 관측창을 멋지게 만들어보려고 나름 머리를 굴려봤지만 실제 로스팅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스테인레스 다시통의 뚜껑을 절반으로 잘라내고 나머지 절반에 스테인레스 방충망(ㅡㅡㅋ)으로 만든 뚜껑을 달았습니다.
킴스로스터 3호에 생두를 부을 때는 이렇게 스테인레스 방충망을 젖혀야 합니다.
로스팅하는 동안 뚜껑이 열리지 않게 잡고 있는 것은 어디선가 빼낸 스프링입니다.
처음 스테인레스 다시통의 뚜껑을 반으로 잘라내고 스테인레스 방충망을 달았을 때는 왠지 조잡하고 꼬질꼬질한 외관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1년 남짓 사용하면서 적어도 기능면에서는 훌륭했기에 이제는 더 이상 개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저의 생두 로스팅은 대략 13분 정도에 완료하곤 합니다.
원래는 8~9분 정도에 로스팅을 완료하곤 했는데, 언젠가 강릉의 커피전문점 산토리니에 커피 생두를 사러갔다가 그곳 사장님께서 13분 정도에 로스팅을 완료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따라서 13분 정도로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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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커피 관련 책에서 읽은 생두 로스팅 전문가들은 1~2초의 짧은 시간을 민감하게 따질 정도로 시간은 로스팅의 중요 요소라 하던데, 저는 그런거 없습니다.
그때그때 적당히 보고, 마음 내키는대로 로스팅 시간은 짧아지기도, 좀 더 길어지기도 합니다.
킴스로스터 3호의 스위치를 올리면 스테인레스 다시통은 돌아가기 시작하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올리고 1/3 정도 선에서 불을 조절합니다.
제 생두 로스팅에서는 불 세기 조절이 가장 중요합니다(ㅡㅡㅋ)
가스레인지의 가스양을 1/3~1/4사이에서 조절해야 하는데, 불을 좀 세게 잡았다 싶으면 여지없이 평소보다 파핑이 빨리 일어나면서 어떤 생두는 타고 어떤 생두는 채 익지 않은, 얼룩 덜룩한 결과물을 얻게 됩니다.
불조절하는 정도는 커피 로스터마다 달라 딱히 뭐라고 말하기 어렵고 결국 여러번 생두를 로스팅하면서 각자 로스터에 맞는 불 세기를 찾아야하는데요, 킴스로스터 3호 역시 처음에는 얼룩덜룩한 원두를 만들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불조절도 시간도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고, 이제는 로스팅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는 대신 가끔 딴 짓을 할 정도로 여유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스테인레스 방충방으로 만든 관측창도 처음에는 생두 상태를 관측하기에는 살짝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왠만큼 적응이 되어 스테인레스 방충망 사이로 보이는 생두 색깔을 보면서 로스팅 정도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권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 입맛에 맞는 로스팅 포인트를 찾았다고 할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헝그리 로스팅
타닥~ 타닥~ 하며 요란하게 콩볶는 소리(!)를 내는 1차 팝이 지나고 투~투툭~짹!(응?) 하는 소리를 내는 2차 팝에 접어들 무렵에 불을 끄고 로스팅을 마무리 합니다.
킴스로스터에서 꺼낸 원두는 망으로 옮겨담고 로스팅 전용(!) 헤어드라이어로 열을 식혀줍니다.
찬 바람으로 뜨거운 원두의 열기를 신나게 빼는 과정에서 생두의 벗겨진 은피가 날아올라 주변에 그득하게 떨어집니다.
어느정도 식힌 원두는 다시 넓은 접시로 옮겨 더 식히는 동안 두 번째, 세 번째 로스팅을 합니다.
한 번 로스팅할 때 200g씩 3번, 600g의 생두를 로스팅해 놓으면 저희 집에서 2주 정도 먹을 양의 커피가 됩니다.
로스팅한 원두를 보관하는 병은 대형 마트의 수입 맥주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글로쉬"라는 맥주의 병입니다.
킴스로스터 3호로 헝그리하게 시작한 로스팅, 헤어 드라이어로 헝그리하게 식혀주었는데요, 맥주병으로 옮겨 원두를 옮겨 담을 때도 페트병을 잘라 만든 깔때기로 헝그리하게 마무리 합니다.
헝그리한 로스팅 도구, 럭셔리한 핸드드립 도구?
저희 집 생두 로스팅 과정은 헝그리 그 자체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나름(!) 럭셔리 합니다.
원두 분쇄는 바라짜 엔코 전동 커피그라인더 담당입니다.
지난해 1월말에 구입했으니 벌써 사용한지 1년이 넘었군요.
매일 아침 원두를 열심히 갈아주고 있는 바라짜 엔코 전동 커피 그라인더, 집에서 쓰기에는 정말 괜찮은 커피 그라인더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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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짜 엔코로 분쇄한 원두는 럭셔리 커피필터, 스위스골드 KF2 커피 필터에 옮겨 담습니다.
매일같이,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종이 커피 필터가 아깝기도 하고, 종이 필터를 통해 걸러낸 커피는 커피의 유분이 거의 제거되어 담백한(텁텁한) 맛이라는 얘기를 보고 큰 맘먹고 구입한 금속제 커피필터입니다.
'금도금'된 스위스골드 KF2 커피 필터는 '커피 필터치고는' 가격이 꽤 나가는 편이지만 수명이 영구적인데다 종이 필터로 드립한 커피보다 풍미와 바디감이 좋아져 만족스럽게 사용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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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골드 KF2 커피 필터에 커피를 수북히 담고, 팔팔 끓였다가 살짝 식한 물을 살짝 부어 뜸을 들입니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에 물을 부을 때 커피 속에 포함되어 있던 가스로 인해 부풀어 오르는 커피 빵은, 로스팅부터 분쇄까지 완료된 마트의 커피 가루에서는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적당히 뜸이 들었다 싶으면 물을 부어 드립을 계속합니다.
금속제 필터의 특징 중 하나는 물빠짐 속도가 꽤 빨라 신속하게 드립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요, 이렇게 드립한 커피의 절반은 마눌님의 출근길에 따라가고, 나머지는 제 아침을 깨우는 에너지 드링크가 됩니다.
취미삼아 시작한 커피 로스팅과 핸드드립, 이제는 매일 하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직접 커피 로스팅과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마셔보니 원하는 대로 조절한 수제 커피를, 무척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 아마 오랫동안 이어갈 듯 합니다.
커피 로스팅의 단점이라면, 예전에는 별 생각없이 마셨던 패스트 푸드점의 커피 맛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패스트 푸드점의 커피맛을 평소 표현 그대로 쓰면 분명 욕먹을 것 같고, 그냥 밖에서 아무 커피나 사먹지 않게 되었다는 정도로만 말하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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