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한 면을 채우는 큰 책상 탐내기
이사 준비하기 얼마 전부터, 큼직한 책상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큼직한 책상을 알아보게 된 첫 번째 이유, 현재 사용 중인 ㄱ자 형 책상이 좁은 방안에 어울리지 않는 비효율적인 모양인데다 거의 10년전 인터넷으로 구입한 싸구려 제품이다보니 바꿀때가 되었다는,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가끔 TV에 나오는 벽 한 면을 한 가득 채우거나 거실 통유리를 등지고 놓여 있는 큼직한 책상이 무척이나 멋져보여 새로 이사간 집에는 무조건 큼직한 책상을 놓아야겠다는 일념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다시 불붙기 시작한 목공 DIY 덕분에 원목 책상을 직접 만드는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Pinterest 등의 서비스를 통해 해외 원목 책상들을 무던히 살펴보며 군침을 흘렸습니다.
외국의 원목 책상 DIY 사진들을 보면 운동장처럼 넓직하면서, 수납공간, 전선처리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가득했지만, 비용과 작업 공간이라는 두 가지 벽에 부딪혔습니다.
한정된 비용과 작업 공간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원목 책상 DIY는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반드시 DIY를 고집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마눌님과 가구를 보러다니면서 제 책상도 꽤 많이 살펴봤습니다.
140*70cm, 오크 원목 책상, 52만원
하지만 역시 제가 원하는, 180cm 이상의 기성품 책상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가끔 보이는 큼직한 기성품 원목책상은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대(70만원~100만원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목공 사이트에서 반조립 책상 주문
머리속으로는 이미 수십 가지의 원목 책상 제작 계획을 세웠다 지웠다 했지만, 원하는 설계와 사이즈대로 원목(집성목)의 재료 비용만 계산해도 거의 50만원에 육박하니 시작 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원목 책상 재료 비용만 몇 번을 산출해보다가, 자주 이용하는 목공사이트, 철천지에 반제품 DIY라는 제품들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사이즈만 결정하면 이미 정해진 디자인으로 으로 목재를 재단해서 보내주고, 그 재료들을 조립하고 칠해서 가구를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일단 제가 원하는 사이즈(가로 180cm, 세로 70cm, 높이 80cm)의 사이즈를 입력해도 20만원을 조금 넘는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더군요.
더욱 맘에 드는 것은, 약간의 디자인 변경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기본 2개만 달려 있던 서랍에 2개를 추가하고, 서랍의 앞면 마감 모양도 바꿨습니다.
서랍 추가 및 디자인 변경에 5만원의 비용이 추가되어, 27만원 남짓한 재료비가 들었습니다.
배송 한 달이 다되어 시작한 책상 제작
이사하기 전 주문을 넣어둔 덕분에 책상 재료들은 이사한 다음 날 새 집에 도착했습니다.
180*70cm의 집성목 통판과 책상 다리, 뼈대, 서랍 등 재료들이 빼곡하게 포장되어 택배로 도착했는데, 막상 받고 보니 부피와 무게가 어마어마 하더군요.
받은 즉시 책상 조립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이사 직후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았기에 받은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포장을 풀었습니다.
사실 스테인, 바니시 칠이 되지 않은 원목 재료들을 오래 방치할 경우 나무에 변형이 올 수 있는데, 원목 상판의 변형을 막기 위해 제 방 한 가운데 눕혀두었고, 덕분에 제 방은 정리가 전혀 되지 못한 채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원목 책상의 다리는 한 면의 길이가 6cm인 집성 각재로, 힘받는 부위의 연결 작업은 이미 완료된 상태로 배달되었습니다.
원목 책상 조립 작업의 시작은 사포질입니다.
목공소에 얼마간의 비용(3만원 남짓)을 지불하면 사포질까지 완료된 상태로 받을 수 있지만 필요한 전처리 작업을 모두 업체에 맡기면 비용이 올라가는데다 DIY의 의미가 없어지게 되어 직접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별도의 작업 공간이 있는게 아니고, 실내에서 작업 하다보니 나무 먼지를 줄이기 위해 진공청소기를 대고 사포질 작업을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철천지에서 배송된 목재 상태는 약간의 사포질만으로도 맨들맨들한 표면이 될 정도로 목재 상태가 좋았던 것입니다.
집성목 상판은 특히 정성들여 사포질을 했습니다.
옹이가 없는 칠레파인(뉴질랜드 소나무)
잘 보이지 않는 몇몇 부분에 타카 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굳이 안해도 되지만) 우드필러를 이용해 타카 자국을 메웠습니다.
배송된 원목의 상태, 재단 상태는 무척 만족스러웠지만, 서랍 하판은 에러다 싶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더군요.
한 쪽면이 흰색 코팅된 3mm 합판이었는데, 원목 책상을 조립하겠다는 제 의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실망스러웠던 상태의 코팅합판
이미 재료비가 마눌님이 허락한 선을 넘어선 상태라 꽤 고민을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4mm 자작나무 합판을 따로 주문했습니다.
31*44cm, 두께 4mm 자작나무 합판 4장을 주문하는데 13000원 남짓한 비용이 추가됐지만, 원래의 허접한 코팅 합판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져 다행입니다.
길이 180cm의 집성목 상판을 받쳐줄 뼈대는 과연 얼마나 튼튼할지, 살짝 걱정이 되었고 주문을 하기 전 문의를 해봤는데, 넓은 면을 충분히 지지할만한 보강목을 넣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군요.
양쪽 다리와 연결된 뼈대 외에도 세 군대의 힘 받는 보강재가 추가 되었고, 가조립 해보니 적잖히 안심이 되었습니다.
원래 설계는 나사를 이용해 보강재를 고정하는 방식인데, 원목 상판의 수축과 팽창으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8자 철물을 쓰기로 했고, 보강재에 8자 철물용 홈을 팠습니다.
원목책상에 스테인과 바니시 바르기
원목책상 재료의 사포질과 8자 철물 작업을 위한 홈파기 작업을 완료한 뒤 스테인을 칠하기로 했습니다.
스테인은 은은한 나무결을 살리면서 원하는 색상을 내는 목재용 안료인데 나무의 뒤틀림을 막는 역할도 합니다.
우드 스테인은 1년 전부터 사용해 왔는데, 이번에 원목 책상에 칠을 하면서 은은한 색상을 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6/07/04 - 우드스테인 한 통을 다 쓴 뒤 알게 된, 수성 우드스테인으로 원하는 색감 내는 방법
책상 서랍, 책상 상판은 메이플 색상, 책상 다리는 미디엄 오크 색상으로 칠했습니다.
우드 스테인은 조립 완료 후 칠하기도 하지만, 저는 좀 더 꼼꼼(깔끔)하게 바르고 싶은 욕심에 조립하기 전에 칠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1)
방에 책상 상판이며 스테인을 칠한 나무들이 잔뜩 쌓여 갈 때 쯤, 마눌님의 인내심도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는지, 언제쯤 완성되는지 묻곤 했습니다.
우드 스테인의 건조가 끝난 뒤, 책상 서랍을 조립했습니다.
책상 서랍은 짜맞춤 형식으로 깔끔하게 재단되어 온터라, 서랍의 네 벽을 짜맞추면서 자작나무 합판을 바닥에 끼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목공본드를 바르고 조립
서랍을 끼워 맞추는 사이사이에 목공본드를 발랐고, 목공본드가 굳을 때까지 끈으로 단단히 묶어 두었습니다.
사실 이런 작업을 위해 클램프 두 개를 구입했지만 서랍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구입한 클램프이다보니 정작 필요한데서는 사용할 수 없었네요.
책상 상판을 받칠 뼈대를 조립했고
역시 목공본드가 굳을 때까지 끈으로 꽁꽁 묶어 두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2)
책상 다리와 상판 뼈대의 고정은 장구너트(번데기너트)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다리마다 두 개의 장구 너트로 고정했습니다.
메이플 색 스테인이 은은하게 먹은 책상 서랍의 표면에 바니시를 발랐습니다.
바니시는 나무에 피막을 형성해 나무 표면을 보호하고, 수분의 흡수를 막고, 계절 변화에 따른 수축과 팽창을 줄이는 마감재입니다.
제가 사용한 수용성 바니시는 냄새가 독했던 옛날의 니스(바니시의 일본식 발음)보다 훨씬 냄새가 적고 건조도 빨랐습니다.
다만 아무리 냄새가 적다고 하지만, 넓은 면적을 칠하다보니 특유의 휘발성 용제 냄새가 풍기는터라, 환기에 특히 신경써야 합니다.
평소에는 바니시 칠을 두 번으로 마무리했지만, 이번 원목책상은 좀 더 반복해서 칠했고, 바니시 칠과 건조, 가벼운 사포질이 반복될 수록 매끈하고 은은한 피막이 살아났습니다.
서랍의 바니시 칠을 반복하는 중에 책상 다리와 뼈대에도 바니시 칠을 반복했습니다.
바니시 칠을 시작한지 딱 하루만에 장마비가 내렸고, 습도가 85% 이하에서만 작업하라는 바니시 작업지침을 충실히 지켜려다보니, 이틀 남짓 작업이 중단되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 3
이틀 뒤 비가 그쳐 책상 서랍과 책상 다리/뼈대의 바니시 칠과 반복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고, 마지막까지 남겨 두었던 책상 상판 스테인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고심 끝에 책상 상판의 색상은 옅은 메이플 색상으로 처리하기로 했고,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스테인을 희석하여 바르고 닦아 원하는 색상을 얻었습니다.
4개의 책상 서랍마다 각각 2개의 3단 슬라이드 레일을 부착했고
책상 서랍 양쪽에도 각각 2개의 레일을 부착했습니다.
책상 상판의 스테인 작업이 완료된 뒤 바니시를 칠했는데, 처음에는 생각만큼 매끈한 느낌이 나질 않더군요.
바니시가 마른 뒤, 320방 사포를 이용해 거친 면을 다듬고 바니시 칠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바니시 작업을 7~8회 반복한 끝에 은은한 광택과 매끈한 느낌이 근사한, 책상 상판이 완성되었습니다.
열흘에 걸쳐 만든 원목 책상, 완성
그렇게 책상 뼈대와 책상 상판이 완성된 뒤, 엉망이던 방을 깨끗이 치우고 닦아냈습니다.
일단 책상 뼈대를 벽에 붙인 뒤
책상 다리 한 쪽에 드레멜로 이름과 날짜를 새겼습니다.
책상 상판으로 덮여버릴 자리에 날짜를 새기다보니, 왠지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책상 상판을 뼈대 위로 올리고, 설치해 두었던 8자 철물을 상판에 고정했습니다.
8자 철물을 비롯, 몇몇 자세한 얘기는 다른 포스팅에서
그렇게 대형 원목책상이 완성됐습니다.
고심했던 스테인 색상도 잘 나왔고, 책상 상판의 바니시 마감 느낌도 근사한 원목책상입니다.
무엇보다 책상 서랍과 전면의 마감이 깔끔하게 나와주었고, 역시 별도로 주문한 아연 합금 재질의 책상 손잡이의 느낌도 근사하니 마음에 듭니다.
디자인을 수정할 때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책상 서랍의 깊이가 좀 아쉽지만 큼직한 서랍이 4개나 달려 있으니 자잘한 수납 공간은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책상의 위아래 전선 정리 작업도 채 마무리 되지 않은데다, 책상 상판의 바니시칠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며칠 건조시킨 뒤 쓰자고 머리속으로는 생각했는데, 원목책상 위에 키보드를 살짝 올린 뒤 두드려 본 느낌이 근사해서 그냥 죄다 올려 사용중입니다.
엉망으로 어지럽혀진 방에서 오랜 시간 진행된 작업 과정을 모두 지켜 본 마눌님께서는, 완성된 원목책상이 근사하다는 얘기와 함께 기성품 원목 책상의 가격이 그렇게 비싼게 이해가 간다고 하더군요.
원목책상을 직접 만들겠다고 한 것 부터 사서 고생하기로 맘먹은 것이기도 했고, 기왕 시작했으니 사포질과 스테인, 바니시 칠까지 원없이 해보자며 작업 기간을 정말 넉넉하게 잡고 만들었는데, 고가의 기성품 원목 책상 따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맘에 드는 원목책상을 갖게 되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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