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에 오도가도 못하는 아기 고양이 구출, 긴박했지만 나름 고심했던, 고양이 구출기

아침부터 더웠던 날, 고양이 소리

연일 찜통 더위가 계속되던 여름, 아침이라 공기는 조금 시원했지만 쨍쨍 내리쬐는 햇볕, 매미소리까지 더해져 의심할 것 없이 찜통더위가 예상되는 날이었습니다.


마눌님은 출근을, 저는 모닝 커피를 준비하던 중 매미소리 사이로 고양이 소리가 얼핏 들렸습니다.


평소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나 유튜브 영상을 즐겨 보는터라, 스마트폰의 유튜브가 잘못 틀어졌나? 싶었는데 작고 또렷한 고양이 소리가 간간히, 계속 들리더군요.


가끔 다른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 적은 있지만, 고양이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기에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고양이 소리냐고 하던 마눌님도, 잠시 후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고, 아마 지상에서 들리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천안시 성거산


오전 10시 30분 쯤, 밖에서 들리는 고양이 소리의 횟수가 더 잦아졌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며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대충 확인한 뒤 아파트 산책로로 나왔습니다.

아파트 산책로 고양이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이동해 보니, 고양이 소리는 점점 커졌고 아파트 철제 펜스 뒤쪽에 종이 박스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저 근처에 고양이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건너편의 박스를 확인한 순간 소리가 뚝 끊겼습니다.

아파트 산책로 고양이


종이 박스 안에 정체불명의 락엔락 박스가 보였지만, 펜스 뒤쪽으로 손을 밀어 넣어도 닿지 않는 곳이라 더 이상의 확인은 어려웠습니다.

아파트 산책로 고양이 구조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종이 박스와 락엔락통만

더구나 펜스 뒤쪽은 풀숲이 제법 울창한데다 배수로와 난간석의 높이가 1m 이상 되다보니 넘어가기도 어려워 일단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한창 햇볕이 뜨거운 오후에도 간간히 고양이 소리는 들렸는데 오후 4~5시가 지나면서 고양이 소리가 더 자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같은 장소로 다시 갔더니, 오전에는 보이지 않던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에옹거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아기 고양이 구조오전에는 보이지 않던 아기 고양이

태어난지 몇달 되지 않아 보이는 아기고양이였고, 난간석 자리의 대부분은 박스가 차지하고 있어 고양이는 좁은 돌 위에서 버티고 있더군요.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땡볕 아래서 계속 울어댄 녀석치고는 그나마 기운이 있는 편이었지만, 오전과 달리 이제는 밖으로 나와 애옹거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오전에 다가갔다가 조용해져 바로 돌아섰던 것은, 근처에 어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람 손을 탄 아기 고양이는 어미가 다시 거두지 않고 버린다기에 섣불리 손댈 수 없었는데, 종이 박스나 락엔락 통이 한나절이나 지나도 그대로인 것을 보면, 사람이 거두었다가 버린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제 펜스 위로 팔을 뻗어봤지만 팔이 닿지 않는 거리였고, 넘어가기엔 발을 디딜만한 자리가 마땅찮았습니다.

넘어가기 편한 펜스를 찾아 다른 쪽으로 움직이려니, 아기 고양이는 (그냥 가지말고 구해달라는 듯) 더 목청껏 울어대더군요.

아파트 산책로 펜스


펜스를 넘어가도 발디딜 곳이 마땅찮고, 펜스를 딛고 넘어서려니 고양이가 경계석 뒤쪽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기 고양이 구조

차를 가지고 아파트 바깥 도로로 나가 펜스 반대쪽으로 접근을 할지, 일단 펜스를 넘을지 고민하던 중에 펜스 바깥쪽 배수로 정리 작업을 하던 분이 지나갔고, 덕분에 고양이를 펜스 너머로 넘겨 받았습니다.

구조한 아기 고양이 용품 긴급 공수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었고, 뭘 먹여야 할지도 몰라 이웃 블로거께 SOS를 요청했습니다.

마트에서 제품 사진을 일일이 찍어 보내며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캔과 사료, 배변용 모래를 사왔습니다.

고양이 모래 사료 캔


아기 고양이는 페트병 그릇에 담긴 캔을 머리와 발을 처박고 열심히 먹었고, 캔을 먹고난 뒤에는 물도 찹찹 마셨습니다.

하루종일 땡볕에서 울기만 했던 녀석 치고는 잘 먹어주어 다행입니다.

아기 고양이 캔사료


고양이가 배를 채우는 동안 박스집을 만들어주라는 조언을 받아, 구해온 박스를 쓱쓱 잘랐고

고양이 종이박스 집


박스 안쪽에 방석을 깔아주었는데, 박스 안쪽보다는 박스 옆 커피나무 그늘을 더 즐기는군요.

고양이 종이박스 집


밥을 먹고 난 뒤에는 꼼꼼히 그루밍도 하고

아기 고양이 그루밍


바닥을 톡톡 치면서 유인하면 엉덩이를 낮게 깔고 살랑살랑하다가 달려드는 모습이, 작아도 고양이인가 봅니다.

아기 고양이 사냥 모드


밤늦은 시간이 되니 꾸벅꾸벅 졸고 있네요.

고양이 졸음


잠이 잘 들었나 싶었는데, 새벽에 또 애옹애옹 소리가 들렸고 덕분에 새벽 3시에 캔을 꺼내 덜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은 새벽같이 깨우더니 정작 본인은 박스집 대신 구석의 빈 쌀독에 올라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기 고양이 구조


두루마리 휴지 케이스 뒤로도 쏙 숨는 작은 고양이지만, 깨물면 아프고 좌식의자에다가 스크래치도 하는 영락없는 고양이입니다.

아기 고양이 스크래치


고양이 장난감이라고는 전혀 없어서 좀 사던지 만들던지 해야겠다 싶었는데, 바닥에 떨어져 있는 페트병 뚜껑을 가지고 제법 야무지게 노네요ㅎㅎ


아기고양이지만 사람 손을 탄 녀석인 듯, 제 주변에 자주 착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바닥에 앉아 있으면 그 옆에 붙고, 의자에 앉아 있으면 의자 밑으로와 있습니다.

아기 고양이 개냥이영락없는 개냥이


첫 날은 경계가 덜 풀린 듯 바로 누워 자더니, 다음 날에는 박스 옆에서 뒤집어 자는 걸 보면 그나마 안정을 찾은 듯 합니다.

아기 고양이 숙면


고양이가 잠든 사이에, 고양이를 구조했던 장소로 가보니 종이 박스 안쪽의 락엔락통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종이 박스에 조차 팔이 닿지 않는 깊이라 락엔락통에 뭐가 들어 있는지,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 없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에 버려진 종이 박스에서 락엔락통만 가져간 걸 보니 참 씁슬하더군요.

아파트 산책로 펜스 고양이락엔락 통에 뭐가 들었길래?

동물 중에서도 고양이를 참 좋아해서 캠핑장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기도 하고, 고양이 키우는 블로거들의 포스팅과 유튜브 동영상을 즐겨보곤 하지만, 집사가 되기 어려운 몇 가지 사정이 있어 고양이 집사로서의 인연은 없었습니다.


아파트 거실까지 들려온 고양이 울음소리로 구조하게 된 인연은 흔히 말하는 '간택'인 듯 싶지만, 이 녀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여전히 확신이 서질 않아 집사가 될 것인지 분양을 시킬 것인지 고민 중입니다.


다행히 아파트 커뮤니티에 입양을 원하는 고양이 집사 분이 나타난 상황이라 어떤 선택을 하던 한결 마음은 편안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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